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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성복 = 배고픔이란 게 있다

한상량 2012. 3. 6. 16:48
배고픔이란 게 있다

어디에 칸이션을 재생싴키는
지하의 불이 있는가?
-파블로 네루다, 「다문 입으로 파리가 들어온다」

배고픔이란 게 있다. 꺼지지 않는 배고픔. 뭘 못 먹어서가 아니다. 우리 아이 초등학교 때 할아버지 선생님, 72평 아파트 사는 승엽이 엄마 학교 오면, ‘이상하다, 난 왜 승엽이 엄마 얼굴만 보면 배가 고프지?’ 하고 껄걸 웃었다는데, 정년퇴직 얼마 전 테니스 치다 세상 떠난 그이 배고픔은 테니스가 꺼준 것이다.
그러나 아침해처럼 씩씩한 배고픔도 있다, 굶주린 흔적이 없는 배고픔, 보습학원 김 원장은 동네 테니스에서 수준급인데, 고수 가운데 고수 유사장만 나타나면 입이 벌어진다. ‘유사장님만 보면 이렇게 좋네요, 매일 좀 나오세요.’ 하수 가운데 하수 나를 보면 똥 씹은 표정을 하는 그에게, 나는 상표 뜯긴 불량식품이다.
출근 시간에 쫓긴 사내들 하나 둘 자리 뜨고 나면, 왠지 나는 심드렁해진다. 환갑 진갑 다 지난 할매들한테 판판이 깨지면서도, 구력 십 년의 명예가 못 마뜩한 것이다. 구토감 일으키는 불량식푸에게도 배고픔은 있다. 空腹처럼 썰렁한 아침 테니스 장에, 노란 공 쫓아다니는 백발의 할매들 미국 자리공처럼 낯설다.